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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렘키의 『도파민네이션』은 현대 사회의 쾌락 구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제목부터 강렬합니다.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극적인 느낌 뒤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쉽게 중독되고 있는지에 대한 냉철한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스탠퍼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그는 수십 년 동안 중독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단순히 약물이나 도박, 알코올만이 아니라 ‘모든 즐거움’이 중독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스마트폰 알림, 쇼핑, 넷플릭스, 심지어 관계에서도 우리는 도파민의 파도에 휩쓸리며 살고 있습니다. 렘키는 이 시대를 “쾌락의 과잉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건 ‘기쁨’이 아니라 ‘균형’이라고 말합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단순히 중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끌리고, 무엇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가?”

렘키는 우리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기쁨을 좇기보다, 멈춤 속의 평화를 배우세요.”

조용한 공간 속에서 빛과 그림자가 균형을 이루는 장면을 통해 마음의 균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입니다.

쾌락의 시대, 우리는 왜 멈추지 못하는가

애나 렘키는 현대인의 뇌가 끊임없이 자극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SNS의 알림, 쇼핑 앱의 할인 문구, 게임의 점수 상승—all 이들이 우리 안의 도파민 회로를 자극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쾌락의 강도가 커질수록 뇌는 그만큼의 자극 없이는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렘키는 이것을 ‘쾌락-고통 균형의 붕괴’라고 부릅니다. 기쁨을 얻기 위해 더 큰 자극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그 자극이 줄 때마다 고통이 밀려온다는 것이죠. 그녀는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이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SNS를 잠깐만 하려다 밤을 새워버린 학생, 피로를 잊기 위해 일에 몰입하다 무기력에 빠진 직장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음식을 폭식하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메커니즘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렘키는 우리 뇌가 쾌락과 고통을 하나의 저울 위에 올려놓고 균형을 맞추려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저울을 한쪽으로만 기울이려 하죠. 그녀는 조용히 경고합니다. “당신이 쾌락을 끝없이 좇을수록, 고통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도파민의 법칙을 이해하는 순간

책의 중심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작동 원리가 있습니다. 렘키는 도파민을 단순히 ‘행복 호르몬’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욕망의 언어’라고 표현합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쫓게 만들고, 그것을 얻었을 때는 빠르게 사라져버립니다. 즉, 기쁨보다 ‘기대’의 순간이 우리 뇌를 더 강하게 자극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다음 자극을 찾아 나섭니다. 렘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파민은 만족이 아니라, 결핍의 신호다.” 스마트폰을 계속 확인하는 이유도, 완벽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무언가를 놓칠까 봐’라는 불안 때문입니다. 그녀는 인간의 뇌가 본래 ‘결핍을 느끼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합니다. 오래전에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능력이었지만, 지금처럼 자극이 넘치는 시대에는 오히려 독이 됩니다. 도파민의 법칙을 이해하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쾌락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움직임의 감정’이라는 걸. 그래서

쾌락을 줄일 때 찾아오는 진짜 기쁨

애나 렘키는 쾌락을 완전히 끊으라는 극단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의도적인 절제”를 제안합니다. 그녀는 이를 ‘도파민 리셋’이라 부릅니다.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극을 차단하고, 그 빈자리를 견디는 연습을 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뇌가 균형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거나, 커피를 끊거나, 쇼핑을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뇌의 보상 체계가 달라지는 걸 수많은 실험으로 보여줍니다.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예전보다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낍니다.” 렘키는 이 변화가 바로 ‘진짜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자극의 크기와 상관없이 느껴지는 평온함, 그게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이라고요. 그녀는 ‘도파민 금식’이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는 행위라고 강조합니다. “무언가를 멀리할수록, 진짜 나에게 가까워진다.” 그녀의 이 말은 중독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남깁니다.

균형을 되찾는 새로운 선택

책의 후반부에서 렘키는 ‘도파민 균형의 회복’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단 24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끄고 자연 속을 걷는 것, 식사 시간에는 화면을 보지 않고 천천히 씹는 것, 하루 10분이라도 침묵 속에 머무는 것.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되돌리는 첫걸음이라고요. 그는 인간이 본래 고통을 피하려는 존재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고통을 완전히 없애려는 순간, 우리는 더 큰 고통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요. 이 부분에서 렘키는 아주 인간적인 목소리를 냅니다. “고통은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쾌락을 멀리할수록 삶은 단조로워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더 깊은 만족이 자랍니다. 도파민의 균형이 회복될 때, 우리는 드디어 외부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조용히 이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결국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도파민은 누구의 통제를 받고 있나요?”

쾌락을 넘어 균형으로

『도파민네이션』을 덮고 나면 마음이 묘하게 조용해집니다. 애나 렘키는 쾌락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이해하고 다스릴 때,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뇌는 본래 쾌락과 고통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찾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균형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쾌락이 없는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고통이 없는 세상은 공허하다.” 결국 삶의 의미는 그 두 축의 조화 속에 있습니다. 렘키는 그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다시 행복을 배우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도파민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그녀의 메시지는 오히려 역설적입니다. ‘덜 자극적일수록 삶은 더 깊어진다.’ 단순한 절제가 아닌, 마음의 재조율. 책을 덮을 즈음 우리는 깨닫습니다. 쾌락을 통제하는 힘이란, 결국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힘은 누구에게나 이미 내면 깊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