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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는 인간의 마음과 몸이 어떻게 상처를 기억하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정신의학자이자 트라우마 연구의 권위자인 그는 수십 년간 전쟁, 학대, 사고 등으로 마음의 균형을 잃은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몸은 잊지 않는다.”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은 사실 몸 어딘가에 새겨져 무의식 속에서 계속 재생된다는 것이죠. 이 책은 트라우마를 단순히 심리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신경계·감정·육체가 함께 얽혀 있는 전체적인 현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작가의 문장은 과학적이지만 인간적이고, 복잡한 의학 용어 속에서도 깊은 공감이 묻어납니다. 그는 말합니다. “트라우마는 이야기로 치유되지 않는다. 몸이 다시 안전하다고 느낄 때, 그제서야 마음도 회복된다.”
몸이 기억하는 상처의 흔적
베셀 반 데어 콜크는 정신의학자이자 임상가로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단순히 ‘나쁜 기억을 떠올리는 병’이 아니라 몸 전체가 지속적으로 위험 신호를 보내는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뇌의 편도체는 여전히 과거의 위협이 현재에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교감신경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래서 트라우마 환자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몸이 굳거나, 작은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는 이를 “몸의 경보 시스템이 꺼지지 않은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환자들은 논리적으로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걸 알지만 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괴리가 트라우마의 본질이자 동시에 치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는 치료의 첫 단계로 ‘몸의 감각을 다시 느끼는 법’을 가르칩니다. 마음으로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안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숨쉬기, 몸의 긴장 풀기, 간단한 동작—그 작은 반복이 뇌와 신경계의 언어를 다시 쓰는 과정이 됩니다. 그는 이 과정을 ‘몸의 회복 기억’이라 부릅니다.
트라우마는 말보다 깊은 곳에 있다
이 책의 인상적인 점은, 트라우마를 ‘이야기로 푸는 것’의 한계를 솔직히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수많은 상담과 치료를 진행하며 깨달았습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이 몸의 감각에 새겨져 있다는 것. 트라우마는 단순히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재생’입니다. 그는 환자들이 과거의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그 당시의 심박수, 호흡, 근육 긴장이 그대로 재현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냄새나 빛 같은 작은 자극에도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그는 이를 ‘감정의 시간여행’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과거가 끝났다는 걸 알지만 몸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트라우마 치료에서 “이야기보다 감각이 먼저”라고 강조합니다. 말을 통한 상담만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몸을 진정시키는 훈련,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 부드러운 움직임이 먼저 필요하다고요. 그때 비로소 뇌의 기억 회로가 다시 쓰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몸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그제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몸을 통해 마음으로 가는 길
베셀 반 데어 콜크는 트라우마 회복의 핵심을 “신체의 재통합”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요가, 명상, 호흡 훈련,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등 다양한 치료법이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신경계의 균형을 되찾는 직접적인 통로임을 밝혀냅니다. 그는 실제로 요가 수업에 참여한 환자들이 약물치료보다 더 큰 안정감을 경험했다고 전합니다. 움직임 속에서 몸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공포에 붙잡혀 있던 몸이 현재로 돌아올 때, 비로소 트라우마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그는 이를 “몸의 현재화”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접근은 기존의 정신치료와는 전혀 다른 관점입니다. 그는 치료실을 ‘대화의 공간’이 아닌 ‘감각의 공간’으로 바꿨습니다. 환자들에게 지금 느끼는 감각을 묻고, 그 감각을 따라 호흡하게 합니다. 그는 강조합니다. “몸이 다시 세상을 믿을 수 있어야 마음도 세상을 믿게 된다.” 그의 치료는 과학적 근거 위에 있지만, 동시에 깊은 인간적 이해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몸의 회복’은 결국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는 과정입니다.
기억보다 중요한 것은 감각이다
『몸은 기억한다』는 뇌과학과 인간의 감정을 함께 다루는 드문 책입니다. 저자는 기억을 되살리는 대신 몸의 감각을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기억은 바뀔 수 있지만, 감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을 “몸 안의 지문”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새로 써 내려갈 수는 있다고요. 그 과정은 느리고 때로는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진짜 회복이 자랍니다. 그는 말합니다. “트라우마는 약으로 지워지는 게 아니라 안전한 경험으로 덮이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관계 맺고, 몸을 편안히 두는 순간—그때 몸은 조금씩 새로 배웁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단순히 ‘치유’라는 단어가 아니라 ‘회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몸은 기억하고, 마음은 그 기억을 해석하며, 그 사이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몸이 안전해야 마음이 산다
책을 덮으면 비로소 제목의 의미가 온전히 와닿습니다. ‘몸은 기억한다’는 말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베셀 반 데어 콜크는 인간의 회복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깊은 트라우마라도 몸이 다시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고요. 그는 치유를 “신체적 용기”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고, 다시 움직이고, 다시 신뢰하는 일. 그게 진짜 회복의 시작이라고요. 『몸은 기억한다』는 의학서이자 동시에 인간을 향한 따뜻한 기록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면서도, 그 취약함 속에 회복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단지 고통만이 아닙니다. 사랑받았던 온기, 안전했던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던 경험도 모두 몸에 남아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당신의 몸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