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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제목만 보면 철학서처럼 느껴지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아주 가까운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프롬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불안해졌는지, 왜 가진 것이 늘어나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그의 문장은 빠르지 않지만 깊고, 쉽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오래 머무는 울림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무엇을 갖고 있는가’보다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중심에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무언가를 더 가지려 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놓치는 순간도 많습니다. 프롬은 그런 마음의 흐름을 천천히 보여주며 다른 방향을 제안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 두 번 정도 크게 흔들립니다. 한 번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소유’의 세계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깨닫는 순간이고, 또 한 번은 ‘조금 달라져도 괜찮겠다’는 조용한 안도감이 스칠 때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 기분이 듭니다.

소유 중심의 삶이 남기는 불안

프롬은 지금의 사회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가질 것’을 요구한다고 말합니다. 더 많은 물건,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성과. 이 모든 것이 마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는 기준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부족함을 느끼고,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불안도 함께 커집니다. 프롬은 이런 마음의 흐름을 “끝이 없는 결핍의 경험”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무리 채워도 또 채워야 할 것 같고, 작은 성취도 잠시 지나면 금방 잊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소유 중심의 삶에 익숙해지면서 ‘관계’도 비슷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대신 그 사람을 평가하고, 함께 있는 시간을 느끼기보다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런 삶은 마음의 여유를 점점 갉아먹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가졌다는 감각은 순간적이지만, 존재한다는 감각은 오랫동안 남는다.” 소유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습관 때문이 아니라, 그 구조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삶의 시선’을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가진 것을 늘리는 대신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관계 속의 감정을 느끼는 시간. 그게 소유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물건보다 순간의 감정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고요한 공간의 분위기를 담았습니다.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프롬이 말하는 ‘존재’는 단순히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삶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는 존재를 “경험하고, 느끼고, 나누는 삶”이라고 설명합니다. 존재 중심의 사람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타인을 소유하려 하지 않으며,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머뭅니다. 그는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작은 순간에도 만족을 느끼며, 그 만족은 외적 조건과 크게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의 말에 온전히 귀 기울이며, 산책을 하면서 바람의 감촉을 느끼고, 하루의 끝에 스스로에게 “오늘은 어땠지?” 하고 묻는 행동들이 존재의 영역입니다. 프롬은 이렇게 말합니다. “존재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 평가하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관용이 모두 존재의 기반입니다. 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관계 속에서 얼마나 머물고 있었는지, 어떤 순간들을 흘려보냈는지, 무엇을 위해 바빠졌는지 떠오릅니다. 프롬은 존재의 삶이 특별하거나 대단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일상에서 찾아오는 감각이라고 강조합니다.

경험의 가치를 되살리는 삶

프롬은 인간이 ‘경험’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감정보다 소유를 우선하면서 마음의 감각이 점점 둔해지고, 삶의 만족도도 함께 낮아진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여행을 갔을 때 풍경보다 사진을 먼저 떠올리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 대화보다 이미지를 신경 씁니다. 경험 그 자체는 사라지고, “무엇을 갖고 돌아갈까”라는 생각만 남습니다. 프롬은 이 점을 가장 큰 문제로 보았습니다. 경험이 사라지면 관계도 깊이를 잃고, 삶도 점점 얇아진다고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경험은 소유할 수 없지만, 존재를 풍요롭게 만든다.” 사람들은 종종 큰 성공이나 거대한 목표를 통해 삶을 바꾸려 하지만, 프롬은 작은 경험들이 모여 삶의 감정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는 일, 마음에 남은 문장을 곱씹는 시간, 편안한 침묵 속에서 머무는 순간. 이런 경험들이 하루를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단락에 이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존재 중심의 삶은 노력보다 감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요.

관계의 깊이를 되찾기 위한 시선

프롬은 관계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순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소유 중심의 관계가 왜 자주 무너지거나 지치는지 설명합니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기준이 높고, 감정을 소유하려 하며, 관계를 통해 자신을 보완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무거워집니다. 존재 중심의 관계는 다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줄지보다 ‘함께 있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프롬은 이 설명을 하며 인간이 본래 타인과 연결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존재 중심의 관계는 마음을 회복시키고, 삶을 더 깊게 만들어준다고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실천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사랑론을 넘어 관계 전반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됩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게 고요해지는 순간,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이런 감정들이 바로 존재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법

『소유냐 존재냐』의 마지막에서 프롬은 사람들에게 완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 한 가지를 말합니다. “삶의 중심을 무엇에 둘 것인가.” 소유의 중심에 둘지, 존재의 중심에 둘지. 그 선택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고요. 존재 중심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화려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작은 변화로 시작됩니다. 하루 중 몇 분이라도 멈춰 감정을 느끼는 일, 관계 속에서 상대의 말을 조금 더 듣는 일, 필요한 만큼만 갖고 나머지를 내려놓는 일. 이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삶의 무게가 조금씩 바뀝니다. 프롬은 인간이 본래 존재 중심의 삶에 더 가까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용한 순간에 편안함을 느끼고, 누군가와 따뜻하게 연결될 때 깊은 만족을 느낀다고요. 책을 덮으면 마음에 은근한 여유가 남습니다. 지금 가진 것보다 지금 느끼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프롬의 말이 오래 남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