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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의 『에디톨로지』는 가벼운 책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면 생각보다 묵직하게 남는 문장이 많은 책입니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려면 단순히 정보를 더 쌓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편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책은 딱딱한 이론 대신 익숙한 예시와 생활 속 장면을 바탕으로 이어져서, 읽는 동안 특별히 어려운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는 사람의 감정과 사고가 흩어져 있을 때는 쉽게 지치고 흔들리지만, 그것을 다시 붙잡는 기준이 생기면 삶에 리듬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남이 만든 기준 속에서 움직여 왔는지 돌아보게 되고, 동시에 ‘내가 직접 삶을 편집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은근히 힘을 줍니다. 읽는 사람은 어느 순간 두 번 정도 마음이 크게 흔들립니다. 한 번은 마음 한쪽에 오래 쌓여 있던 생각의 습관을 발견하는 순간이고, 또 한 번은 그 습관을 바꿀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이 보일 때입니다. 이 가능성이 마지막까지 잔잔하게 이어집니다.

아늑한 공간의 책상, 'LESS IS MORE' 문구와 함께 손에 들린 여러 카드들의 섬세한 선택과 연결. 삶의 편집과 정리, 새로운 관점의 심리적 과정.

세상은 정보가 아니라 편집으로 움직인다

김정운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보의 양보다 ‘편집하는 능력’이 지금의 시대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삶의 대부분이 정보의 과잉 속에서 흘러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시간에도 수많은 뉴스, 이미지, 의견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사람들은 그 정보 속에서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그는 이런 시대일수록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그 정보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마음이 더 복잡해지고 행동은 느려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을 만드는 것이 삶의 편집을 시작하는 첫 단계라고 제안합니다. 취향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음악, 머무르기 편한 공간,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 같은 작은 요소들이 모여 삶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취향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선택할 줄 아는 순간 마음의 흐름이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편집’은 곧 ‘삶의 정리’입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선택하는 힘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심리와 창의성의 연결을 다시 바라보기

『에디톨로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창의성을 특별한 재능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김정운은 창의성의 핵심이 ‘새로운 연결’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나 경험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과정이 바로 창의성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창의성은 재능보다 시선의 문제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의 마음이 지칠 때는 새로운 연결 자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피로가 쌓이면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기 쉽고, 생각이 굳어지면서 선택의 폭도 좁아집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큰 결심이 아니라, 마음을 잠시 비워내는 작은 여유라고 말합니다. 산책, 짧은 여행, 좋아하는 향기, 음악 같은 작은 자극이 마음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그는 마음이 편안할 때 창의성이 자연스럽게 살아난다고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마음의 공간이 넓어지면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선 억지로 애쓰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설명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쉽게 마음에 남습니다.

관계 속에서 더 가벼워지는 방법

책 후반부에서 김정운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편집’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기대도 늘어나고, 오해와 부담도 함께 자라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관계가 불필요하게 무거워진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솔직한 대화는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고, 서로에 대한 부담도 줄여준다고요. 그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적당히 유지될 때 오히려 관계가 더 건강해진다고 설명합니다. 가까워지는 것과 얽히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거리 두기’가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 단락에서 프롬의 ‘존재의 관계’와 비슷한 느낌이 스치기도 하지만, 김정운은 이를 훨씬 현실적인 언어로 풀어냅니다. 그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훨씬 안정된다고 강조합니다. 그 설명은 부담을 덜어내는 동시에, 마음의 정리를 돕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삶을 다시 편집하는 시선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에디톨로지’라는 개념이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김정운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게 할 것’을 제안합니다. 필요 없는 일과 감정, 버거운 관계, 과한 목표를 덜어내는 일. 이 과정이 삶의 에너지를 되찾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삶을 편집하는 능력이야말로 현대인이 가져야 할 중심 감각이라고 말합니다. 나에게 맞는 것들을 선별하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선택하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향으로 정리하는 일. 이런 작은 편집이 쌓이면 하루는 훨씬 단단해지고, 삶의 속도도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책장을 덮으면 마음속에 이런 문장이 남습니다. “삶은 스스로 편집할 때 비로소 나답게 흐른다.” 과함을 덜어내고 필요한 것들만 남겼을 때 비로소 삶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