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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은 도시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조용히 제안하는 책입니다. 여행이라고 하면 유명한 장소를 빠르게 지나가며 사진을 남기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는 이 책에서 조금 다른 방식을 보여줍니다. 낯선 도시를 천천히 걸으며 그곳의 공기, 길의 질감, 사람들의 움직임 같은 사소하지만 깊은 장면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행기처럼 가볍기만 한 글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던 어떤 감정이 은근히 만져지는 글처럼 다가옵니다. 도시의 구조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할 때도 그는 어렵지 않은 말로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그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떠올리게 만듭니다. 걷는 동안 느껴지는 바람, 오래된 벽돌의 색감, 좁은 골목의 소리처럼 익숙한 여행책에서는 쉽게 다루지 않는 감각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런 감각들이 하나씩 쌓여 책을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도시의 형태가 천천히 그려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결이 손끝으로 만져지는 것처럼 선명해집니다. 이 책은 화려한 장면을 보여주기보다, 눈길이 머물고 마음이 따라가는 장면을 더 오래 담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책을 읽는 내내 두 번쯤 크게 흔들리는 순간이 생깁니다. 한 번은 지금 내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고, 또 한 번은 내가 가본 적 없는 도시인데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곳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입니다. 이런 흐름은 책을 덮을 때까지 이어지고, 마지막엔 조용한 여운이 남습니다.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유럽 도시의 좁은 길을 걷는 사람. '걷기'를 통해 도시의 결을 이해하고 감각을 회복하는 여행의 본질.

걷기라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도시의 결을 알아가는 시간

유시민은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걷기’라고 말합니다. 빠르게 여러 장소를 훑으며 영상을 남기고, 유명한 곳을 바쁘게 따라다니는 여행에서는 그 도시만의 결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는 도시를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방향, 돌바닥의 패임, 오래된 간판의 색감,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길의 동선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작은 요소들이 모여 한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고, 여행자의 몸에 도시의 속도를 스며들게 만듭니다. 특히 그는 도시마다 걷는 리듬이 다르다는 부분을 강조합니다. 어떤 도시는 어딘가 긴장된 움직임이 느껴지고, 어떤 도시는 거리가 조금만 비어 있어도 묘하게 안정감이 깃들며, 어떤 도시는 소란스러운데도 따뜻함이 묻어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지도만 봐서는 알 수 없고, 발걸음을 옮길 때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과정이 아니라, 그 도시가 가진 리듬에 내 감정이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경험이라고 설명합니다. 걷는 동안 불필요한 생각이 조금씩 줄어들고, 도시의 움직임을 따라 마음이 단단하게 가라앉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도시가 여행객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여행객이 도시의 속에 들어가 조용히 함께 걸음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그는 이 시간을 ‘도시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길어진 산책 속에서 천천히 모아지는 장면들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습니다. 목적지에 닿는 것보다, 걸음이 이어지는 그 흐름 안에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경험을 그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간의 흔적이 남아 도시의 표정을 만들어 내는 과정

도시를 오래 바라보면 어느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 ‘시간이 남긴 자국’이 더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유시민도 이 부분을 깊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유럽의 도시 대부분이 강한 보존 의지를 기반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말합니다. 오래된 건물을 단순한 낡은 구조물로 보지 않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품은 공간으로 바라보며 지켜냈습니다. 그래서 도시를 걷다 보면 전쟁의 흔적이 남은 건물과 바로 옆에 화려하게 복원된 건물이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이 대비가 도시를 더 풍부하게 만듭니다. 그는 건물 하나를 설명할 때도 그 안에 담긴 삶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이 어떤 분위기 속에서 살았는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그 시대의 공기는 무엇이었는지를 짧고 잔잔한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역사책처럼 무겁지도 않고, 여행책처럼 가볍지도 않습니다. 그는 시간의 층을 따라 걸을 때 도시의 표정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의 권력 구조가 드러나고, 좁은 골목이 이어진 구역에서는 서민들이 어떤 일상을 살았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큰 길과 작은 길의 흐름, 건물의 배열, 벽돌의 질감 같은 요소들이 다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를 ‘시간을 읽는 여행’이라고 부릅니다. 명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여행에서는 이런 흐름을 놓치기 쉽지만, 발걸음을 느리게 하고 시선을 넓히면 도시가 어떻게 쌓여 왔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는 이런 시선이 도시를 단순한 공간으로 보지 않게 만들어 준다고 말합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이 아니라, 시간의 켜가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생명력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머무르는 시선으로 도시의 감각을 회복하는 경험

유시민의 여행기는 ‘머무르는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볼 때 생기는 감정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여행을 할 때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는 방식보다, 도시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머무르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행자의 속도로 도시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면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지만, 도시의 속도에 맞추어 머물면 마음에 남는 것이 전혀 다릅니다. 그는 도시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길게 쓰기도 합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거나, 강가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하루의 온도를 천천히 읽어 보는 식입니다. 이런 시간이 여행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그는 여행 중에 문득 찾아오는 조용한 순간이 가장 오래 기억된다고 말합니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 순간의 감각이 다시 떠오르고, 그 감각을 통해 삶의 속도까지 다시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시를 보며 느낀 감정이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은 창처럼 작동한다고 설명합니다. 도시가 가진 고유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일. 이것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도시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동안 불필요한 생각이 조금씩 사라지고, 남겨진 감정이 또렷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을 즐기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도시의 빛과 소리가 쌓이며 만들어지는 감각의 레이어를 충분히 느끼는 순간,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이 됩니다. 이 책은 그런 회복의 순간을 담담한 문장으로 풀어내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자주 자신의 속도를 놓쳤는지 조용히 되돌아보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