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책 『당신이 옳다』는 단순한 심리학 서적이 아닙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감정, 상처, 고통이 그 자체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임을 강하게 주장하는 “존재의 인정을 위한 선언서”에 가깝습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내담자들의 마음을 정성스럽게 들여다본 저자의 시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 자기 이해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심리학’이라는 학문적 거리감보다 ‘사람’에 대한 진심이 먼저 와닿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말 못 할 고통을 안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옳다』는 “그 감정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진심 어린 편지와도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불편하거나 괜히 혼자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이란 ‘있는 그대로의 인정’
정혜신 박사는 『당신이 옳다』에서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판단 없이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멈춰서 다시 읽게 됐습니다.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공감이라는 단어는 대개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정도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훨씬 더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개념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옳다고 ‘인정’하는 태도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친구가 힘든 상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그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다들 그렇게 살아”, “나는 더 힘든데도 참았어” 같은 말을 쉽게 꺼냅니다. 언뜻 보기엔 위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공감은 그런 말 대신 “그럴 수 있어”, “네가 그렇게 느낄 만한 일이었구나”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가 과거에 했던 말들과 행동들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무너져 있을 때, 저는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상대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지 못하는 좌절로 다가갔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전하는 공감의 메시지는 단순히 ‘심리 치료 기술’이 아닙니다. 인간 관계에서의 태도, 더 나아가 인간 존재를 대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감이며, 치유의 시작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매우 강렬하고 울림이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치유의 언어
『당신이 옳다』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치유는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상담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고통이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런 일로 힘들어해도 되나?”, “이런 걸로 우울하다면 너무 유약한 거 아닌가?”라는 자책이 먼저 나옵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 자체로 옳다”고. 책은 각 장마다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사례들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일상적인 경험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에서의 상사와의 갈등, 부모로부터의 무시, 친구 사이의 소외감 등.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데…’ 하며 자연스럽게 내 감정과 연결됩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그동안 외면했던 내 감정과 마주하게 해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치유 메시지가 마음 깊이 와닿았던 부분은 ‘감정을 명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우리는 감정의 이름을 제대로 붙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외롭고, 공허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몰라 그냥 덮어두고 넘겨버립니다. 정혜신 박사는 그런 감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이 바로 마음을 돌보는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심리 상담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은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첫 심리 상담’ 같기도 합니다. 의학적 용어나 어려운 이론 없이도 이 책은 마음의 상처를 만지고 다독여줍니다. 저자 특유의 온화한 문체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내 얘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위로받는 기분이었습니다.
트라우마와 일상의 연결고리
『당신이 옳다』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트라우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우리는 흔히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라고 하면 사고, 폭력, 학대 등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겪은 이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혜신 박사는 말합니다. “트라우마는 외상적인 사건보다 반복된 외면과 부정에서 더 깊게 만들어진다.” 즉, 일상 속 반복되는 감정 무시, 인정받지 못한 상처들이 우리 안에서 감정의 마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오래전 직장생활을 떠올렸습니다. 한창 바쁘고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시기, 팀장에게 어떤 제안을 했지만 그 제안은 말이 끝나기 전에 일축됐고, 그 일이 반복되며 저는 점점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별일 아니야”라고 넘겼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것이 ‘작은 트라우마’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혜신 박사는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습관이 오히려 치유를 늦춘다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를 계속 묻기보다 “그랬구나”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더 먼저라는 말은 정말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너무 분석하다가 정작 감정 자체는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또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진심에서 비롯된 공감이라면 그 한마디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요. 저도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시절이 있었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눈물이 났습니다. 단순한 위로가 아닌 존재 자체를 긍정해주는 문장들이 지금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감정의 언어
『당신이 옳다』는 단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감정의 언어입니다. “감정은 설명보다 인정이 먼저”라는 이 책의 메시지는 혼자 상처를 감추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당신이 느끼는 불안, 슬픔, 억울함, 외로움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감정이 존중받아야 하고 있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말합니다. “감정을 느끼는 그 자체로 당신은 옳다”고. 그리고 이 단순한 한 문장이 실제로 사람을 살립니다. 감정을 돌보는 일은 이제 ‘특별한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당신이 옳다』를 읽고 난 후, 저는 내 감정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도 더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저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용기 그리고 나 자신에게 “충분히 힘들었구나”라고 말해주는 따뜻함. 그것이 이 책이 전하는 진짜 공감의 힘이 아닐까요? 지금 힘든 감정 속에 있다면 이 책 한 권이 당신에게 작은 숨 쉴 틈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