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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편안한 감정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화자인 나쓰키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과 어딘가 맞지 않는 감각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그 다름은 뚜렷한 이유가 있지도 않고, 말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쓰키는 자신의 상태를 이해받기보다는,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조정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꾼 채 곁에 머뭅니다. 일상은 계속되지만, 그 안에서 나쓰키는 늘 한 발 물러난 위치에 서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미묘한 거리감은 삶 전체에 은근하게 스며듭니다.

이 소설은 누군가가 사회에 잘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응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감각을 눌러 두는지에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나쓰키는 타인의 감정이나 사회적 규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합니다. 그 방식은 주변과의 거리를 만들지만, 동시에 그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는 최소한의 질서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정상이라는 말이 얼마나 좁은 기준 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기준이 얼마나 많은 감각을 배제해 왔는지가 천천히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그 배제의 과정을 서두르지 않고, 나쓰키의 시간에 맞춰 조용히 따라갑니다. 독자는 그 느린 속도 안에서 인물의 상태를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세상과 어긋난 감각을 지닌 이들을 위한 소설 지구별 인간.

어린 시절의 감각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나쓰키의 어린 시절은 늘 어딘가 어긋나 있습니다. 학교와 가정에서 기대하는 감정 표현과 행동 방식은 그에게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는 왜 웃어야 하는지, 언제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나쓰키는 반복해서 이상한 아이로 불리게 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냅니다. 설명되지 않는 어긋남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게 합니다. 이 시선에 익숙해지는 과정 자체가 나쓰키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으로 남습니다.

이 어긋남은 문제로 단정되기보다, 불편한 상태로 오래 남아 있습니다. 나쓰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조정하려 하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어색하고 서툽니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규칙이 버거워질수록 상상 속으로 물러납니다. 나쓰키에게 상상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숨을 고를 수 있는 장소에 가깝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배열하며, 간신히 균형을 유지합니다. 이 균형은 작지만, 그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중요한 힘입니다.

이 소설에서 어린 시절의 감각은 성장과 함께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쓰키의 어긋남은 시간이 지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집니다. 이는 성장이 곧 규범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나쓰키의 시간은 그 증거처럼 조용히 이어집니다.

정상이라는 언어가 강요하는 삶의 형태

이 작품에서 말하는 정상은 객관적인 기준이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삶의 모양에 가깝습니다. 사회는 그 모양을 자연스러운 경로처럼 제시하고, 그 경로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이유를 묻습니다. 나쓰키가 반복해서 마주하는 결혼, 연애, 직업, 가족에 관한 질문들은 걱정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다르게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구입니다. 그 질문들은 반복될수록 나쓰키의 삶을 점점 더 좁은 틀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질문이 쌓일수록 선택지는 줄어들고, 침묵은 점점 길어집니다.

나쓰키는 그 요구에 맞서기보다, 우선 눈에 띄지 않는 쪽을 선택합니다. 타인의 기대를 흉내 내고, 사회가 원하는 반응을 연습하며, 스스로를 최대한 무난한 존재로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그를 편안하게 만들기보다 점점 더 지치게 합니다. 정상적인 삶을 연기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자신의 감각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워집니다. 말해야 할 설명은 늘어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언어는 점점 줄어듭니다. 그 공백은 쉽게 채워지지 않은 채 남습니다.

이 소설은 정상의 틀 안에 머무르는 일이 정말로 안전한 선택인지 조용히 되묻습니다. 그 안에 남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설명과 침묵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 나쓰키의 시간을 따라가며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 무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의 방향을 서서히 바꿔 놓습니다.

극단적인 선택과 사회에 남는 질문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쓰키의 선택은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는 더 이상 사회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 않으며, 정상이라는 기준 자체에서 물러납니다. 이 선택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불편한 감정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단순한 충격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쓰키가 어떤 시간과 압력을 거쳐 이 지점까지 밀려났는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무라타 사야카는 이 선택을 회복이나 화해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나쓰키의 삶은 조화로운 결말로 수습되지 않고, 사회와의 거리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 채 멈춥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결말이 단순한 파멸로만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기준 안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한 사람이 택한 방식으로 남습니다.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형태에 가깝습니다.

『지구별 인간』은 읽고 나서도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소설입니다. 누구를 정상이라 부를 수 있는지보다, 그런 구분이 어떤 사람들을 끝까지 몰아붙여 왔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작품이 남기는 불편함은 이야기 밖에서도 오래 이어지며, 사회의 기준과 개인의 삶 사이에 남아 있는 간극을 조용히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