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는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인생을 정리해 주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인생을 정리하려 드는지, 그리고 그 정리 욕망이 삶을 얼마나 쉽게 단순화하는지를 끈질기게 되묻습니다. ‘역사’라는 말이 붙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의미와 교훈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기대가 얼마나 많은 삶의 장면을 밀어내 왔는지 조용히 드러냅니다.『인생의 역사』에서 말하는 인생은 완결된 서사와 거리가 멉니다. 어떤 사건은 이후의 삶과 아무런 인과관계를 맺지 않고, 어떤 선택은 끝내 의미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신형철은 바로 이 ‘정리되지 않는 상태’를 인생의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본래 그런 성질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설명..
손웅정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성공의 공식을 설명하는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공을 견디는 사람의 태도를 기록한 책에 가깝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본은 눈에 띄는 기술이나 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간에 어떻게 몸을 쓰고,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반복하느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손웅정은 성과를 만들어낸 순간보다, 성과가 나오기 전과 후에 어떤 태도를 유지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래서 이 책은 빠르게 읽히지 않습니다. 같은 말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 계속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우리는 흔히 기본을 ‘초반에만 필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성과가 생기면 벗어나도 되는 단계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손웅정에게 ..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제목만으로 이미 한 사람의 체념과 사려 깊음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시집입니다. 울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수밖에 없었던 순간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이 시집은 울음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울음이 아무런 해결도 가져오지 못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시간에 더 오래 머뭅니다. 울음은 짧고, 그 이후의 시간은 길다는 사실을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반복합니다.박준의 시 속에는 큰 사건이나 극적인 전환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미 지나가 버린 일, 되돌릴 수 없는 선택, 말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마음들이 배경처럼 깔려 있습니다...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사랑을 말하지만, 그 출발점부터가 우리가 익숙하게 기대해 온 방식과 다릅니다. 이 책은 사랑을 따뜻하게 설명하거나, 감정의 깊이를 칭송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대신 사랑이 얼마나 자주 말 속에서 오해되고, 해석 속에서 왜곡되며, 감정이라는 이름 아래 쉽게 단순화되는지를 차분히 짚어냅니다. 여기서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감정이 아니라, 계속해서 점검하고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신형철은 사랑을 느끼는 순간보다, 사랑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더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우리는 흔히 사랑을 절대적인 감정으로 믿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행동은 정당화되고, 감정이 깊다면 상처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이런 믿음에 조심..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은 욕구를 다스리거나 없애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가 왜 그렇게 강하게 무언가를 원하게 되었는지, 그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집요할 만큼 솔직하게 들여다봅니다. 냅은 음식, 중독, 집착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그것을 문제 행동이나 극복의 대상으로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욕구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의 상태와 감정의 배경을 하나씩 풀어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글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내면을 끝까지 따라 들어가는 기록처럼 읽힙니다.우리는 흔히 욕구를 통제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더 먹지 말아야 하고, 더 원하지 말아야 하며,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단속합니다. 하지만 냅은 그런 태도가 오히려 욕구를 더 강하게 만..
박노해의 『걷는 독서』는 독서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삶의 태도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책에서 독서는 책장을 넘기는 행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걷는 일, 멈추는 일, 숨을 고르는 일, 풍경 앞에서 잠시 시선을 두는 일까지 모두 읽기의 일부가 됩니다. 박노해는 세계 여러 지역을 걸으며 만난 장면과 사람, 그 과정에서 마음에 남은 문장들을 차분히 기록합니다. 그의 글에는 설명보다 체험이, 주장보다 침묵에 가까운 여백이 더 많이 담겨 있습니다.우리는 보통 독서를 머리의 활동으로만 생각합니다. 빨리 읽고, 요약하고, 의미를 붙이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걷는 독서』는 그런 방식의 독서를 잠시 내려놓게 만듭니다. 이 책에서 읽는다는 것은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몸으로 겪으며 마음에 스며들게 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