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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에 대한 과학적 사유,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재구성

by 2daizy 2025. 6. 16.

당연하게만 여겼던 시간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흐른다고 믿어왔던 시간의 개념이 사실은 인간의 인지적 착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도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바로 이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시간에 대한 통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책입니다. 그는 이론물리학자이자 양자중력 이론의 선두주자로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는 가장 최전선의 과학적 시각을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냅니다. 이 책은 시간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물리학, 철학, 심리학, 존재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을 아우르며 ‘보이는 세계’와 ‘실재하는 세계’ 사이의 간극을 사유하게 만듭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일 수 있는지를 자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단순한 물리학 개념 설명을 넘어 독자로 하여금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깊이 있는 지적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도서 리뷰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 시간 개념의 해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로벨리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세 가지 단계로 해체해나갑니다. 먼저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시간 즉 ‘흐르는 시간’은 고전물리학의 유산임을 강조합니다. 뉴턴 이후 수 세기 동안 시간은 절대적이고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흐른다고 여겨졌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이 개념에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로벨리는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흐르는 절대적인 시간을 상상하지만 실은 우주에서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시간은 위치와 중력에 따라 달라지며 속도에 따라서도 그 흐름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GPS 위성은 지구보다 느린 속도로 시간을 경험하고 있으며 지구 중심부보다 높은 산에서는 시간은 조금 더 빠르게 흐릅니다. 이러한 상대적인 시간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지금'이라는 것도 허구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로벨리는 이어서 열역학적 시간 즉 엔트로피의 개념을 도입하여 왜 우리가 시간의 방향성을 느끼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만이 인간이 인지 가능한 시간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간 자체가 흐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주가 무질서로 향하는 경향성 속에서 인간의 인지가 그 변화를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즉, ‘시간이 흐른다’는 말은 사실상 인간의 뇌가 질서에서 무질서로의 변화를 순차적으로 체험한다는 표현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로벨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물리적 세계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설명은 일반 독자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오도록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복잡한 이론이 아닌 일상적 비유를 통해 시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양자 중력과 시간의 소멸 –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

카를로 로벨리는 이 책에서 양자중력 이론을 통해 시간이라는 개념이 궁극적으로는 물리 법칙 속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합니다. 전통적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 두 이론을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루프 양자중력 이론은 기존의 시간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루프 양자중력에서는 시간은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다른 요소들 간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파생적 현상으로 보입니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근본적인 실재가 아니라 우주 안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환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단순한 철학적 추론이 아니라 수학적, 물리학적으로도 뒷받침되고 있으며 특히 미시적 세계에서는 사건들이 반드시 시간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거나 시간 순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로벨리는 이러한 개념을 일상 언어로 풀어내면서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순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개념인지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감각 역시 생물학적, 인지적 작용에 기반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나아가 그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어도 세계는 여전히 작동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사건들의 관계와 구조를 통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기존의 틀을 해체하고 훨씬 더 유연하고 다차원적인 사고방식으로 전환하게 만듭니다. 또한 로벨리는 이러한 과학적 논의를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인간 존재와 의식, 삶의 감각과 연결 지으면서 철학적인 사유의 지평까지 넓혀 나갑니다. 이는 단지 과학을 배우는 것을 넘어 존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살아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 변화의 일부로서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라는 인식은 매우 강렬한 철학적 울림을 줍니다.

시간 없는 세계에서 인간다움을 다시 묻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혼란스러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재의 본질을 다시 묻는 깊이 있는 성찰을 가능하게 합니다. 로벨리는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 도전하며 물리적 실재와 인간 인식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도록 이끕니다. 그는 이 책에서 물리학을 통해 철학을 이야기하고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세상의 면면을 보여주며 고정된 시각을 유연하게 바꾸는 데 도움을 줍니다. 결국 시간의 부재는 삶의 무의미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 됩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복잡한 개념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그 안에 깊은 철학적 질문을 담아내어 과학적 사고를 일상과 연결시키는 보기 드문 책입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물론이고 철학적 사유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도 일독을 권할 만한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