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강의 채식주의자 침묵과 저항이 드러내는 존재의 본질

by 2daizy 2025. 6. 3.

‘사람은 왜 어떤 선택을 하는가’라는 물음은 단지 표면적인 행동보다 그 이면의 심리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는 그 질문에서 출발하여 한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선언한 뒤 벌어지는 일련의 갈등과 파괴를 그려냅니다. 이 소설은 채식이라는 일상적 선택을 매개로 인간의 본질, 사회적 억압, 몸과 정신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하며 독자에게 깊은 충격과 사유를 안겨줍니다.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에 대한 저항과 인간성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인간의 자유와 통제, 침묵과 폭력, 존재와 소멸 사이의 복잡한 질문들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제기합니다.

한강 채식주의자

소외된 선택, 정상성의 폭력에 맞서다

『채식주의자』는 총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주인공 영혜를 둘러싼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이 화자로 등장하고, 2부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인 영상작가가 중심 인물이 되며, 3부 ‘나무 불꽃’에서는 언니 인혜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시점 구성은 주인공의 내면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영혜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특히 영혜의 채식 선언은 단지 식습관의 변화로 끝나지 않으며 점차 그녀의 일상과 정신, 인간관계 전반에 균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변화에 당황하고 분노하며 그녀를 정상에서 벗어난 ‘문제적 존재’로 간주하고 아버지는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폭력을 행사합니다. 가족은 이해와 수용보다는 통제와 교정을 시도하며 이는 결국 영혜를 더 깊은 침묵과 고립 속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의 실체를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쉽게 타인의 억압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영혜는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식욕도, 사회적 관계도 거부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합니다. 이는 단순한 정신 질환이나 일탈로 치부될 수 없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은 저항과 침묵의 몸짓으로 읽힙니다.

몸을 둘러싼 욕망과 예술 그리고 침묵의 저항

소설의 2부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가 중심 서술자로 등장하며 이야기의 분위기는 더욱 기이하고 섬뜩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형부는 영상작가로서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추구한다고 자임하지만 실상은 자신 안에 내재된 욕망을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하려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는 영혜의 몸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집착하며 그것을 영상 작품으로 구현하고자 합니다. 이는 예술이 개인의 육체를 어떻게 대상화하고 소유하려 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영혜는 그 촬영에 순순히 응하지만 이는 수동적인 복종이라기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저항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말이 아닌 몸을 통해 혹은 몸을 무기로 삼아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형부와의 관계는 단순한 성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덮인 또 하나의 폭력이며 이 경험은 영혜에게 또 다른 형태의 파괴를 가져옵니다. 한편으로는 형부 또한 예술가로서의 실패와 좌절, 사회적 기대 속에서 억눌린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핍을 타인의 신체를 통해 보상하려는 방식으로 선택하고 이는 결국 자기도 모르게 폭력의 공모자가 되는 길로 이어집니다. 영혜는 이를 통해 더욱 깊은 고립으로 나아가며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녀의 선택과 침묵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며 소설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와 그 너머의 영역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말이 아닌 육체로 표현되는 고통, 이해받지 못하는 침묵 그리고 제도적 개입이 빚어내는 또 다른 폭력이 겹쳐지며 독자는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절박한 경계에 서게 됩니다.

가족과 제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의 폭력

소설의 마지막 장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 인혜가 화자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영혜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가족과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며 동생을 설득하거나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혜는 점차 동생의 행동을 외면할 수 없게 되고 자신 역시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해 온 수많은 억압과 좌절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식사를 거부하며 나무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고집합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육체와 감각을 벗어나려는 극단적인 탈인간화의 의지로 해석됩니다. 인혜는 동생의 삶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여전히 그녀가 완전히 도달한 세계에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소설은 이처럼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동시에 사회적 규범과 제도가 개인의 선택과 정체성을 얼마나 쉽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며 ‘정상’이라는 말이 지닌 폭력성과 위험성을 통찰하게 만듭니다. 영혜는 끝내 나무가 되고자 하며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벗어나려는 근원적인 저항으로 읽힙니다. 그녀의 침묵은 말보다 더 강한 목소리를 내며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듭니다.

침묵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문학의 자리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여성의 선택이나 정신 질환을 다룬 소설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침묵, 육체, 선택, 제도, 폭력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타인의 세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으며 문학이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탐색하고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사례입니다. 영혜의 선택은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억압과 고통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절제된 문체와 서늘한 감각으로 한 개인이 감내하는 고통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의 반응을 차분하게 그려냅니다. 『채식주의자』는 독자로 하여금 타인의 침묵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말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합니다. 그것이 문학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자 우리가 이 작품에서 깊이 사유해야 할 이유입니다.